나의 아이디어는 너무도 아름답기 때문에 틀렸을 리가 없다



월간키노 | 프리츠랑, 메트로폴리스
월간키노 | 프리츠랑, 메트로폴리스

월간키노 | 프리츠랑, 메트로폴리스

2020. 9. 21. 09:31호호호🎃/영화티비

 

히틀러가 집권하였던 1933년, 괴벨스는 프리츠 랑에게 그들을 위해 영화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프리츠 랑은 괴벨스에게 불려갔던 바로 그 날, 독일을 떠나 헐리우드로 갔다.

 

그는 거리로 내려왔고, 어둠과 그림자 속에서 매우 빠른 속도로 전염병처럼 번져가는 파시즘의 광기를 보았다. 그는 카프카처럼 변신했고, 그래서 마치‘메트로폴리스’의 지하세계 속을 살아가는 시민이 되었으며 그 이후 영원히 메트로폴리스의 시인으로 살아갔다.

 

 

 

 

Metropolis
시대정신 Zeitgeist
KINO March 1998 97

시대정신 - 메트로폴리스. 프리츠 랑 (이종은 기자)
96 ZEITGEIST <메트로폴리스> 프리츠 랑 1926년 SF 표현주의 영화의 인공세트

 

1927년, 독일의 한 작은 마을에서 <메트로폴리스>를 본 아돌프 히틀러는 괴벨스에게 프리츠 랑을 자신의 프로파간다 영화 감으로 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히틀러가 집권하였던 1933년, 괴벨스는 프리츠 랑에게 그들을 위해 영화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프리츠 랑은 괴벨스에게 불려갔던 바로 그 날, 독일을 떠나 헐리우드로 갔다. 그리고 먼 훗날 자신은 <메트로폴리스>를 만들 당시부터 좋아하지 않았으며, 영화의 결말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며 후회를 금치 않았다.


히틀러가 <메트로폴리스>를 프로파간다 영화로 인식한 것은 그 반동적인 결론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메트로폴리스>는 바그너의 전통과 니체적인 열정에 사로잡힌 19세기 SF 영화이다. 


독일에서 영화는 헐리우드나 프랑스, 또는 이탈리아나 소비에트처럼 성장하였다. 독일영화는 무엇보다도 오페라이며, 건축이었고, 그리고 회화였다. 프랑스 영화가 초현실주의 다다와 인상주의적 회화 사이 어딘가에 서 있었다면 독일 영화는 표현주의와 오페라의 그 어딘가에 놓여 있었다. 독일 영화는 점점 더 규모를 더해갔으며, 스튜디오 내부를 거대한 우주로 만드는 주장의 연장에 놓여 있었다. 여기에 프리츠 랑은 뒤늦게 도착하였다. 19세기적 교양을 가진 프리츠 랑에게 영화는 그 자체로서 받아들여지기 보다는 표현주의 회화와 소리 없는 오페라였다.

 

그는 영화에서‘프레임 안에 온 우주가 존재해야 한다’라고 믿은 시네아스트이다. 그것은 프레임이란 구조 속의 세포이며, 충돌하는 모순이라고 생각한 에이젠슈테인과 다른 것이며, 또는 프레임이란 세상으로 통하는 무대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르느와르의 생각과도 달랐다.

 

그는 프레임이 그것으로 충만한 질서이기를 원했다. 프리츠 랑은 두편으로 이루어진 신화적 비전 <니벨룽겐의 반지>와 <크림힐트의 복수>를 만들었다. 이것은 <칼리가리박사의 밀실> 이후 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세 가지 경향 중 하나가 되었다. 무르나우와 파브스트가 만들어낸 거리 영화, 표현주의 화가들이 이룬 회화-건축 영화, 그리고 프리츠 랑의 오페라 영화는 서로 다른 방향에서 표현주의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동시에 프리츠 랑은 이 모든 것을 자신의 영화 속에서 하나로 만들었다. 그는 영화에 대해서 질문을 던졌다.“ 왜 우리 시대의 영화는 호머나 일리어드와도 같은 이야기를 담을 수 없는가? 영화는 우리들에게 물려준 예술적 유산을 담는 것인가, 아니면 예술의 더 오랜 이상을 다시 성취해내기 위한 것인가?”

 

스펙터클은 그 시대의 반영이다. 왜냐하면 반영이란 그 시대의 토대에 조응하기 때문이다. 대중들의 정서가 모아지고, 그 자체로 압축되거나 치환되어 있는 비유의 형식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스펙터클은 자기 시대의 테크놀로지의 바탕 위에 세워지는 것이며, 또한 영화와 관련지어진 예술의 경향 아래 놓이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스펙터클은 그 자체로 자기 시대의 가장 커다란 거울이기도 하다.

 

그 거울은 시각적 형태로 굴곡지어 지기도 하고, 또는 산문체의 내러티브를 통해 주름 접히기도 한다. 그러나 스펙터클은 그것이 표현되어지는 순간 자기 시대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일정한 관계를 가져왔다. 독일표현주의 영화는 그 중에서도 나찌즘에 대한 여러 가지 형태의 관계를 보여주는 가장 불균형하게 자리잡힌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프리츠 랑의 <메트로폴리스>는 그 자신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영화는 예술적 유산을 담는 미래적 비전이었다. <메트로폴리스>는 표현주의를 바탕으로 미래주의와 기계주의를 받아들여서 새로운 시각적 오페라를 창조한 영화이다. 프리츠 랑은 이 영화를 독일 영화에서 일종의 레퀴엠과도 같은 역할을 하기를 바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화 속의 프래임들이 각각‘거대한 무대’와 같다고 생각한 프리츠 랑은 촬영감독 칼 프로인트와 함께 새로운 세트를 세우기 시작했다.

 

모든 장면들은 UFA 촬영소의 실내 세트에 세워졌으며, 그 거대한 구도들과 기계들이 살아 움직이는 것과 같은 미래의 세계는 자본주의의 야만적인 공장들로부터 그 이미지를 가져왔다. 프리츠 랑은 지상과 지하의 두 세계로 나누어 천국과 지
옥으로 만들었다. 지상은 자본주의의 유토피아적 미래 비전이며(동시에 이 비전들은 아이러니칼하게도 헐리우드에서 80년대 이후 SF 영화들의 디스토피아가 되었다), 지하는 자본주의의 디스토피아적 알레고리가 되었다(심지어 이것은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에서 재현되었다).

 

마천루의 숲과 같은 지상세계는 프리츠 랑이 배에서 바라본 뉴욕의 첫 인상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지상세계의 거리를 불빛으로 반짝이는 뉴욕의 야경처럼 보이게 하기를 원했지만 세트를 짓는 것이 불가능해지자 거울을 통해 작은 모형으로도 큰 상을 만들어낼 수 있는 ‘슈프탄 프로세스’를 고안하게 하여 초기 단계의 미니어처 촬영을 하였다. 그리고 그속에 마치 장식과도 같이 군중을 배치함으로써 조형적인 효과를 극대화시켰다. 여기서 프리츠 랑은 <니벨룽겐의 반지>에서 시도하였던 것에서 더 나아갔다.

 

그것을 회화적인 통일성을 고양시키기 위해 단순하고 거대한 건축적인 구조를 집중적으로 사용하고, 인간을 거대한 빌딩과 원시적인 자연의 악세사리로 감축시키는 데 그치지 않았으며, 그 배치들 속에서 지하세계의 노동자들을 마치 기계의 일부처럼 만들어버리는 한편 역동적인 움직임을 만들어냈다.

 

이제 남은 일은 지상세계와 지하세계가 어떻게 ‘만나는가’이다. 프리츠 랑은 여기서 순결한 노동자 소녀 마리아와 사악한 과학자에 의해 만들어진 로보트 마리아(일인이역)를 그 접점에 매개시킨다. 지상세계에서 호기심 많은 청년이 지하세계로 내려가고, 지하세계에서는 로보트 마리아가 노동자들을 선동하여 폭동을 일으킨다. 계급투쟁? 그러나 프리츠 랑은 이것을 혁명으로 이끌지는 않는다.

 

<메트로폴리스>는 말 그대로 자본주의의 암울한 비전이다. 지하세계의 노동자들은 자신의 해방을 위하여 두뇌(자본가)와 손(노동자)을 이어줄 심장(!)을 원하지만, 두뇌로부터 파견된 로보트는 그들에게 기계를 부숴버리라고 명령하며, 자본가와 노동자를 화해시키는 심장은 또다른 자본가일 뿐이다.


프리츠 랑은 독일 영화의 운명을 완성한 작가가 되었다. 그는 독일 영화가 영원히 제3제국의 시대정신에 대한 반영으로서만 제 몸체를 드러내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소비에트 영화란 쿨레쇼프 공장이며, 프랑스 영화는 르느와르이며, 일본 영화는 오즈인 것과 같은 의미에서이다.

 

독일 영화는 그 이후 프리츠 랑으로부터 단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했다. 오직 독일 영화는 프리츠 랑의 스펙터클을 부정함으로써만 다시 시작될 수 있었다. 파스빈더는 자신의 영화가 프리츠 랑의 영화를 닮아가는 것을 두려워 했다. 그것은 프리츠 랑이 우리 세기의 독일의 역사가 바이마르의 전통과 나찌즘의 제국 사이에 서서 세계 역사 내로 개입하리라는 것을 그의 영화 속에서 담아내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메트로폴리스>는 더 없이 어두운 독일적 비전으로 그려낸 우리 시대의 자본주의에 대한 미래 영화이다. 그것은 다가올 미래에 대한 영화가 아니라 아무리 지나도 영원히 현재에 바탕을 둔 미래가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에서이다.

 

그러나 7백만 마르크의 제작비와 3만 5천명의 엑스트라가 동원된 이 괴물 같은 대작 <메트로폴리스>는 이상하게도 흥행에서 완전히 참패하였다. 이것은 그의 영화가 보여주는 그 어두운 비전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이후 프리츠 랑은 더 이상 토마스 만과 같은 그 거대한 전망을 갖지 않았다. 그는 거리로 내려왔고, 어둠과 그림자 속에서 매우 빠른 속도로 전염병처럼 번져가는 파시즘의 광기를 보았다. 그는 카프카처럼 변신했고, 그래서 마치‘메트로폴리스’의 지하세계 속을 살아가는 시민이 되었으며 그 이후 영원히 메트로폴리스의 시인으로 살아갔다.‘ 메트로폴리스’의 지하세계는 헐리우드에서 필름 느와르와 포스트모던 SF가 되어갔다.